꽃 찾아 길 따라/전북과 부안 여행

부안문화원에서 차역사 이야기를 하다

긴 봄 2020. 7. 6. 22:20

부안은 풍부한 농산물과 넘쳐나는 수산물로 인해 배가 만들어진 때부터 고려까지 최고의 산업도시이며 무역항이었다.

그럼 언제부터 차를 재배하고 마시며 살았을까?

최초의 재배 기록은 보이지 않고 최초로 마신 흔적이 일연의 삼국유사에 원효와 사포성인의 음다 기록이다.

또한 이규보의 남행월일기에 원효와 사포성인의 기록이 중복된다.

두 기록의 내용으로 보아 부안은 차를 재배를 했던지 최소한 수입차를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안차가 좋다는 기록은 교산 허균의 도문대작에 茶 雀舌産于順天者最佳 邊山次之(차 작설산순천자최가 변산차지)

차는 순천에서 나는 작설이 제일 좋고 변산이 다음이다 라 칭송하였다.

그리고 150여년 후 부안 현감 이운해가 부풍향차보를 남긴다.

또한 토산품조에서 부안은 조선의 세종조까지 작설차를 조공품으로 바치다가 이후 기록에서는 없어진다.

강의를 일찍 끝내고 몇 개 조로 나누어 이운해현감이 지은 다보에 따른 부풍향차를 만들어 본다.

각 향차와 칠향차의 성분과 기능성은 향후 시간이 되면 분석해 보고 싶다.

차의 역사와 기능성보다는 향차만들기 체험이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에 힐링을 준다.

많은 양의 체험은 아니지만 차가 발효하는 향과 칠향차의 약재에서 나는 향기가 아로마 효과를 보여준다.

4개조 5명씩 자연스럽게 그룹이 나뉘고 두 가지 요령 설명만으로 일사천리로 향차를 만든다.

도중에 빠지는 사람없이 끝까지 참여하는 것을 보면 코비드19가 인간들을 정에 굶주리게 했는지 할 수 있다.

어쩌면 코비드19는 이 점을 이용하여 확장해 가는지 모르겠다.

떡차를 만들다보면 아무리 작은 것도 가운데에 구멍을 내주지 않으면 마르지 않고 곰팡이가 생긴다.

둥글게 만들어진 대젓가락이 유용하게 쓰인다.

부안의 차 역사는 중국 항주와 직왕로를 하던 마한 백제의 시기로 추정 할 수 있다.

 

마한세력을 기반으로 조직된 백제의 수군은 동남아가 아닌 중동까지 진출하였고 이후 장보고로 이어진다.

이 기반을 얻은 왕건은 고려를 건국할 수 있었으며 예성강 벽란도는 아라비아의 상인들까지 넘쳐났다.

하지만 조선 수군의 기반인 전라도의 해양세력은 조선반도 최초의 쇄국정책인 세종의 공도정책으로

북방의 사군육진을 개척한다는 이름하에 육군이 되어 여진과의 싸움터로 끌려 가므로 소멸되고

조선의 배는 말 한마리 싣기 힘든 전마선으로 줄어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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