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허자고/차 도구 42

부안현감 이운해의 실사구시

이운해는 부안현감으로 1754~56년까지 재직하였다.그 때 차를 이용할 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하여그 당시에 가장 흔한 병증 7종에 대해 차와 한약제를 혼합하여부풍향차를 만들고 그 기록을 남겨 부풍향차보라 명명하였다.그리고 부안의 대표적 산업이던 도자기산업에도 관심을 두었다.부안은 고려청자의 주산지였으며 몽골의 지배하에서는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설치되어 일본정벌을 위한 배를 건조하였다.이 시기 고려의 청자는 쇠퇴기를 맞으면서 땔감이 부족하게 된 부안청자는 급속하게 해체된다.조선에 들어선 부안은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의 시대로 접어들면서풍부한 백토와 황토를 이용한 옹기와 항아리 등을 만들고 유통하는 전라도 지역 최대의 도자기시장을 형성한다.고려 때 안흥창이 설치되었던 보안면 유천리에서 정유재란 때 왜구의 피해..

고려청자 상감 구름학무늬 찻사발

고려청자 상감 구름학무늬 찻사발이다.겉면은 연화무늬에 구름이 있고 국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안면은 학들이 구름위를 노릴고 있다.변산제다가 있는 유천리는 고려 때는 최고로 번창한 고을중에 하나인 보안현이었다.일제 강점기 전까지 유천리에는 구장터로 불리고 있는 전주목 최대의 장 있었다.일제는 변산반도의 의병들이 투쟁 물자를 이곳 장에서 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치안을 이유로 보안면의 장터를 폐쇄하고 줄포로 옮기면서 부안에는 경찰서를 두 곳에 설치했다.

원대 차도구 다완2

일제 강점기 때 보안면 유천리일대는 청자도굴에 환장한 일본놈들의 황금어장이었다. 가마터는 기본이고 장군이나 말무덤이라 칭하면 무조건 파헤치고 조금 커다란 무덤까지 무차별적으로 훼손했다. 원형을 유지한 다완이 나왔는데 시커먼 기물이 나와서 얼마나 낙담했을까?. 용이 상감된 비취빛 상감청자를 꿈꾸웠는데..... 샘통이다.

원나라의 차도구가 부안에 있다.

긴봄의 차도구 이야기 부안에는 원대의 차도구가 있다. 변산제다가 있는 부안은 고려시대에 최대, 최고의 공업도시였다. 절강성 항주에서 돛만 펼치면 도착하는 곳이 부안으로 천혜의 항만과 조선소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고려 왕실과 귀족들이 사용하는 청자를 만들고 있었다. 일본 정벌에 필요한 선박 절반을 이곳 부안에서 건조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 감독관으로 온 몽고의 다루가치 중 한명의 무덤에서 순장품으로 넣어 준 몽고식 차도구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발굴했다가 일본으로 반출을 못하고 부안중학교에 남게 되었다. 흑유의 다완으로 유약 처리방법은 덤벙기법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평이한 모형으로 흑유로 처리하여 단조롭게 보인다. 원대의 기병들은 산차를 마시기도 했다는데 다루가치는 행정관의 성격이 강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