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의 원효방과 의상봉에 대한 기록이 있다. 원효와 의상이 중국으로 불경공부를 가다가 어느 산골짜기에서 날이 저물어 동굴에 들어가 잠을 잤다고 한다. 원효가 목이 말라 손을 더듬으니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 시원하게 마시고 다시 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에 물바가지를 보니 사람의 해골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 크기면 장정 3명은 너끈하게 눌수 있다. 원효가 중국에 유학을 가던 시기와 돌방무덤이 형성됐던 시기는 200여년 차이가 난다. 위례에서 사비로 내려왔던 시기로 일부 왕족 그 추종세력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했을 확률도 높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면 어설프게 보일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이 정도의 무덤을 만들려면 지배층에 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돌방무덤의 형태를 보면 흙으로 덮었던 것도 있고 그냥 돌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