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해현감 2

부풍향차보의 차명

임진, 병자 호란 이후에 조선의 여성들은 엄청난 탄압에 직면한다. 우선 부모의 재산을 물려 받았던 상속권이 박탈 당하며 출가외인이란 단어로 친정과 단절을 요구 당한다. 시댁에서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칠거지악을 외치며 자녀가 없이 남편이 사먕할 경우 열녀를 강요 당하고 다행이 자녀 중 아들이 있으면 가족으로 인정을 받는 세태가 되었다. 조선은 안정기에 접어들며 경제 의학발전으로 인해 수명이 길어지고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며 여성의 홧병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아이러니는 한국이 여성의 갱년기를 화병이란 병증으로 인정하는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사)부풍향차보존협회 긴봄이 한천 이재를 추적해 본 결과 이운해현감은 스승 이재의 한천정사 이념에 따라 부풍향차보를 저술하고 지금의 출판기념회 또는 논문발표와..

부풍향차보의 저술 연대

1. 부풍향차보의 저술 연대 조선 후기 영, 정조 시대는 유교 사상과 서양의 종교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동서문화의 충돌기로 면면하게 이어지던 차문화도 연경과 복건성 무이계곡을 다녀온 사대부와 실학파 그리고 남부지방 사찰의 승려들에 의해 부활하는 시기이다. 이운해현감은 1710년생으로 몰의 연대는 기록되지 않고 있다. 부풍향차보의 저작 연대는 표기가 되지 않아 연구자들의 추론은 부안 현감으로 재직하던 1755년 또는 56년에 쓴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 54년도 저술은 그해 10월에 부임한 현감의 업무 여건으로 볼 때 불가능하여 모두가 제외한다. 본 고는 저술 시기를 1755년 또는 56년으로 추론한다. 이유는 일반적인 제다시기에 작설차로 만들었을 경우는 1755년 봄철에 찻잎을 따서 향차를 만들고 부풍향차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