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봄의 단엽을 캐다.이야기
어스름한 새벽에 난우회원들이 모여 임실을 향해 출발했다.
전주를 지나 상관부터 짙은 안개 때문에 50미터 앞도 보이지 않아 비상등을 켜고 서행을 한다. 임실 지리에 밝은 회원의 안내로 관촌을 지난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로 빽빽한 관촌 유원지도 보이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오는 의로운 개 이야기로 유명한 오수를 거쳐 박사 엿의 고향 삼계의 산채지에 도착했다.
안개로 인해 주변이 보이지 않으므로 우선 마을 뒷산을 살펴보기로 했다. 모두가 산으로 올라 난들을 열심히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나무 종류와 가지가 뻗은 상태로 동서남북을 구분하며 발품을 팔지만 아무래도 이곳은 아닌가 보다 하며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린다.
10시가 넘어가며 산봉우리들이 섬처럼 나타나기 시작한다.
산 아래에 거북이 머리 모양의 낮은 동산이 눈에 확 들어온다. 저 곳으로 이동해야지 하고 마을을 가로질러 갔다. 드물게 난초들이 보이는데 무더기가 보여 산채 괭이로 살짝 제치는 순간 짧고 둥근 잎이 확 당겨져 온다.
단엽이 일반난초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흔적으로 보아 살피고 간 사람이 있었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을 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우선 눈에 보인 단엽을 캐고 주변을 찬찬히 살폈다. 2m정도 떨어진 곳에 또 다른 단엽이 약간 높은 흙더미 위에서 도도하게 자리 잡고 서 있었다. 조심스럽게 캐서 배낭에 잘 갈무리하여 담았다.
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단엽과 비슷한 환엽이 있어 채집하고 잎에 하얀 한줄 호가 든 개체도 한 더 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함께 온 회원의 목소리가 들려 그 쪽으로 갔더니 이제 형성되는 난초들이 있는데 엽예품 변이종은 보이지 않는다.
그 회원에게 산채한 난초들을 보여주고 환엽을 준다고 했더니 사양한다.
단엽이란 잎의 길이가 일반적인 난보다 짧고 육질이 두껍다. 잎이 짧고 두꺼운 만큼 안정감과 힘을 느낄 수 있다. 잎끝이 둥글 경우 원만하고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여기에 라사지라는 올록볼록한 옆면을 가진 품종은 원예적 가치가 높아진다. 중투, 복륜, 호피반, 서반, 산반의 예를 지닌 무늬가 드는 품종이 나타나는데 이럴 경우 2예, 3예로 아주 명품으로 취급된다.
단엽을 캔 며칠 후 난을 가르친 회원이 “사부님 사부님” 하며 난초를 캔 자리에 한번만 가자며 며칠을 보채다 회사에 휴가까지 냈다며 집 앞에 와서 전화를 한다.
회원과 다른 회원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내 그 자리에 가면 소변을 볼테니 포인트는 물어보지 말라 하였더니 그 자리에서 낙엽을 하나하나 뒤집고 풀포기를 휘젓는다.
그러더니 와 이거 뭐야 하더니 부들부들 떨고 서 있다.
왜 그래 하며 봤더니 내가 캔 단엽의 2~3배 큰 사이즈에 라사지가 바글바글한 난초가 풀 속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내가 조심스럽게 캐서 채집통에 뿌리가 마르지 않게 부엽으로 감싸 넣어주었다.
함께 간 다른 회원도 열심히 단엽을 찾다 하나를 발견하였다. 너무 좋아 급하게 캐다 줄기와 뿌리가 분리되어 버렸다.
이듬해 장마가 끝난 후에 이곳에서 20여 촉 이상의 단엽이 나왔다.
난초는 생강근이 있으면 해마다 새 촉이 나오는데 이것을 집으로 가져가 난분에 심으면 한 두 촉이 나온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누군가가 이곳 흙을 체로 쳐서 생강근을 모두 가져가 버렸다. 이후에는 한 촉도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런 행위는 난초를 키우는 애란인들 사이에 자생지 파괴라고 부른다.
이 일을 겪은 뒤부터 난자생지는 그 누구에게도 공개를 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 누구도 욕심 앞에서는 진실하지 못한다. 라는 것을 절절하게 느낀 계기가 됐다.
'꽃 찾아 길 따라 > 한국춘란-치유도시농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춘란 중투기화 선녀천사 (0) | 2020.03.04 |
---|---|
이쁜 신아들 (0) | 2019.07.18 |
도시농업 한국춘란 벌브 틔우기 (0) | 2018.07.09 |
도시농업 한국춘란 꽃피우기 (0) | 2018.07.08 |
한국춘란 분갈이 (0) | 2018.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