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찾아 길 따라 752

한국춘란 복륜복색화 - 금홍관

일경일화인 춘란을 원예적 가치가 있게 발전시킨 것은 일본의 애란인들이었다. 물론 처음은 중국에서 시작을 하였다. 화예품 중에 복색화는 일본 춘란계에서는 무척 귀한 존재였다. 그들은 한국춘란에 눈을 돌려 많은 품종을 가져 갔고 우리나라의 춘란계도 우리 것을 지키고 개발하여 무수히 많은 복색화를 개발했다.

은선리 돌방무덤 19호와 미지정 무덤

부안의 원효방과 의상봉에 대한 기록이 있다. 원효와 의상이 중국으로 불경공부를 가다가 어느 산골짜기에서 날이 저물어 동굴에 들어가 잠을 잤다고 한다. 원효가 목이 말라 손을 더듬으니 물이 담긴 바가지가 있어 시원하게 마시고 다시 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에 물바가지를 보니 사람의 해골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 크기면 장정 3명은 너끈하게 눌수 있다. 원효가 중국에 유학을 가던 시기와 돌방무덤이 형성됐던 시기는 200여년 차이가 난다. 위례에서 사비로 내려왔던 시기로 일부 왕족 그 추종세력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했을 확률도 높다.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면 어설프게 보일지 몰라도 그 시절에는 이 정도의 무덤을 만들려면 지배층에 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돌방무덤의 형태를 보면 흙으로 덮었던 것도 있고 그냥 돌판이 ..

한국춘란 주금화 - 주홍보

변산제다의 긴봄은 직장에 다닐 적에는 설명절이 마음 편하게 산채를 다니는 시간이었다. 산채를 다녀오던 길에 5시가 가까워 어두워지는데 막판에 야산 디지기를 하자고 해서 마을옆의 산에 내려 주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도 내려 오지 않아 찾아갔더니 주금화가 나온다고 하면서 열심히 꽃대를 까보고 있었다.

한국춘란 주금소심 - 천수

변산제다의 긴봄이 어느 해 설날 차례를 지내고 처가에 가서 인사를 올린 후 점심을 먹고 가까운 고창의 어느 산에 올라 대주의 꽃대를 까보는 순간 대륜의 소심이 까꿍하고 인사를 한다. 여러 개의 꽃대가 있어 다시 한 대의 꽃대를 까보았는데 주금색이 전체적으로 들어 있었다. 그 후 기대와 달리 주금색쪽이 발달하지 않고 일반 소심만 발현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