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찾아 길 따라 752

은선리 마한백제의 석탑

변산제다의 긴봄은 이런 생각을 한다. 백제 땅에 남아있는 석탑은 거의 고려 때 석탑으로 기록하고 있다. 물론 고려 때 조성된 석탑도 있겠지만 한눈에 봐도 백제의 탑을 고려의 탑이라고 한다. 고인돌을 만들던 DNA가 마한백제의 피에는 흐르고 있어 그 결정체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석탑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은선리 석탑은 백제 초기석탑과 중기의 혼용쯤으로 여겨진다. 정읍에 있는 백제의 초창기 형태를 띤 석탑들은 한기씩만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남북국시대와 고려시대 사찰의 석탑은 거의가 쌍탑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왕궁리 석탑처럼 은선리도 지방 왕족의 궁궐터가 아닐까도 뒷산의 수백기의 돌방무덤과 건너편의 왕릉급 능을 보며는... 건너편의 산에도 훼손되고 묻혀서 방치되고 있는 돌방무덤들이 산..

은선리 고분 18호

변산제다에서 정읍 영원면의 은선리까지는 직선거리는 11km 밖에 안된다. 영원에는 백제 돌방무덤이 수백기가 있다. 왕릉급의 릉도 존재하고 있으며 백제시대의 돌탑이 있으며 고부와 덕천에도 있다. 왜 백제의 탑을 상층부의 조각이 섬세하다고 시대를 후퇴시켜 고려의 탑으로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한백제인들의 DNA에는 고인돌부터 시작한 돌을 다루는 기술이 석가탑 다보탑에서 꽃 피운것을 알고 있으면서 부정하고 후퇴시키는 것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 이완용의 후손일 것이다. 관리번호 18호분으로 은선리 고분 중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고 돌을 따듬은 솜씨가 정교하다. 입구의 오른쪽 돌벽이다. 글이나 그림 등을 남겼을 것 같은데 흔적이 없다. 워낙 훼손되고 노출이 되어서 이나마 남아있는 것도 다행이다. 좌측..